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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요 이야기

무왕의 영광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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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다시 한번 그 문화를 익산에서 꽃피운다.

동양 최대의 사찰 미륵사. 그 곳에는 백제무왕의 꿈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백성들의 가장 아픈 마음을 생각하고 이상세계를 펼치고자 하였던 그의 커다란 꿈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미륵사 창건연기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왕과 왕비가 미륵산 사자사에 계신 지명법사님을 찾아가던 중 바로 미륵산 아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한다. 이에 왕비는 절을 짓기를 청하자 무왕은 지명법사와 상의하여 인근의 산을 허물어 뜨려 못을 메우고 절을 지었다 한다. 바로 미륵사다. 미륵부처님, 바로 미래의 부처님 3분을 모셨다. 미륵부처는 미래의 부처님이시다. 3번의 설법을 통하여 모든 중생(사람들)을 구제해 주시는 부처님이시다. 바로 무왕은 전쟁에서 지치고 삶의 어려움의 고통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상세계를 현실화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무왕은 다시 한번 백제를 강건하게 하고 자 하였다. 새로운 정신적 토대를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이 거대한 국립사찰을 지었다. 그리고 최초의 석탑을 만드셨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 무왕은 단순히 꿈과 이상만을 이곳에 담아 놓지 않고 미래의 희망도 담아 놓으셨다. 올해 1월14일 미륵사지석탑 가장 중심부 심주석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비롯한 사리장엄 683점이 세상에 드러났다. 현재의 희망의 빛으로... 가벼운 빗소리에도 미륵산은 연무를 두른다. 부끄러운 새색시인양 눈 오는 날은 그 드넓은 사지가 포근하다. 어머니 품처럼...

  • 왕이 되고 싶다면 이곳으로  - 백제왕궁리유적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그것도 올해로 20년이 넘어가는 왕궁 유적이 바로 익산의 백제왕궁리유적이다. 지금은 왕궁리5층석탑과 발굴현장이 우리를 제일 먼저 반겨준다. 탑의 유려한 선은 가느다라면서도 끊임없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힘이 느껴진다. 국보289호 왕궁리5층석탑 이 안에 또 다른 국보 123호 금제금강경판과 사리장엄구가 있었다. 관세음응험기에 의하면 백제무왕은 익산으로 천도를 단행하여 정사를 운영하였다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수부명기와를 비롯한 금제품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수부 즉 임금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금제품의 섬세함에 백제인의 금속기술에 익산이 보석의 도시임을 다시금 실감케 한다. 금 결국 왕이 쓴 물건 이었다.
  • 무왕은 왜 익산으로 천도를 단행하려 했을까?
    무왕의 생가가 있는 익산은 군사적, 지리적으로 우수할 뿐 만 아니라 풍부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다. 백제의 또 다른 번성에 대한 꿈의 결정체가 바로 이곳 백제왕궁리 유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탑이 말해주듯 무왕의 왕궁은 그 운명을 다하고 다시 사찰로 변모한다. 이곳에서 1.3 km 떨어진 곳에 왕실관련사찰 제석사(지)가 있다. 우리나라의 유일하게 발굴현장을 공개하는 왕궁에 4월의 왕 벚꽃들이 아름답다.
  • 삼국시대 가장 완전하 입체불 연동리석불좌상
    당당한 어깨에 흐르는 옷 주름선이 부처님의 표정을 감히 대신하고 있다. 이 부처님의 얼굴은 최근에 다시 붙여졌는데 이에는 피치 못한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장과 왜군들이 이 곳을 지나려는데 안개가 너무나 심하여 더 이상 진군을 할 수 없게 되자 왜장은 부하를 시켜 이곳에 신비한 조화를 부르는 원인을 알아보게 한다. 조금 후 부하는 이곳에 한 돌 부처가 있다고 고하자 왜장은 이 부처의 머리를 치게 하였다. 그러자 안개는 걷히게 되었고 왜군들과 왜장은 진군을 계속 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최근의 얼굴은 새로 해서 붙여져 약간 어색해 보인다. 하지만 이 불상 뒤의 광배는 무려 높이가 356cm, 그 안에 하나하나 새겨진 무늬에 감동에 또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7개의 화불을 중심으로 화염문, 인동문이 화강암 안에 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사면을 둘러 보니 그 웅장함이 다시 한번 더 느껴진다. 백제는 이러한 커다란 돌덩어리에 정신과 예술의 혼을 다 불어 넣었다. 또한 일본으로 그 백제문물을 전파하고 일본의 아스카문화를 형성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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